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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0일, 한국 MSD 관계자는 한국 정부 COVID-19 치료제, "몰 누피 라비 르" 사전 구매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하루 전 9일, MSD 본사는 미국 정부와 12억 달러(한화 약 1조 3000억 원) 선구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표한 바 있다.
'선구매', '사전 계약'의 단서가 붙는 건, 이 약물이 아직 임상 시험을 마치지 못했고, 미 FDA의 승인이나 EUA (Emergency Use Authorization)를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은 몰 누피 라비 르가 코로나 사태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먼저 MSD 란 회사에 대해 알아보자.
1. 백그라운드
MSD는 Merck Sharp & Dohme의 약자이며, 1827년 독일에서 설립된 약국을 토대로 한다. 무려 19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며, 이 약국을 설립한 Merck 가문이 MSD를 13대째 소유하고 있다.
MSD는 19세기, 미국에 지사를 냈다가 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 회사를 몰수당했고, 전쟁 후 돌려받았다. 이후 미국 법인은 Merck & Co. 란 명칭을 쓰고 분리 경영되지만, 머크사 지분 70%를 설립자 집안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지역은 MSD (Merck Sharp & Dohme)를 회사 이름으로 쓰고 있다.
Merck & Co. 는 한때 매출 규모에서 다국적 제약사 중 1위를 했다. 그러다 후발 회사들의 추격에 순위가 밀렸다. 2020년에 화이자와 아스트로 제네카, 존슨 앤 존슨 등이 코로나 관련 백신 등을 내놓으며 약진했지만, Merck & Co. 는 오히려 매출이 감소해 매출 실적 4위로 밀렸다.
코로나 국면에서는 오히려 후발 업체가 된 것이다.
절치부심 한 Merck & Co. 은 지난해 앞서간 회사들을 추격하기 위해, 백신 2종과 치료제 2종을 개발하는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먼저 백신 후보물질을 가지고 있던 Themis Bioscience 란 회사를 인수하여 코로나 레이스에 뛰어들기로 했다. 지난해 5월 말 이야기이다. 또, 비영리연구소인 IAVI (International AIDS Vaccine Initiative)와 손잡고 새로운 백신 후보 물질을 개발하기로 했다.
이에 더해, 11월에는 OncoImmune이라는 생명공 학사를 무려 4억 25백만 달러에 매입했다.
OncoImmune 은 지난해 4월, 미 FDA로부터 면역조절 치료제 후보물질 CD24Fc (Merck가 인수한 후 MK-7110로 명명)의 3상 임상시험 승인을 얻어 미 전역 15개 임상시험 기관에서 고농도의 산소치료와 인공호흡기 치료가 필요한 중증 코로나19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에 돌입한 바 있다. 그 결과 렘데시비르보다 회복 속도가 7일이나 빨랐다고 보고했다.
치료제 후보물질을 찾던 Merck & Co.로는OncoImmune의 후보물질에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Merck & Co. 는 이미 지난해 3월 Ridgeback Biotherapeutics라는 회사와 치료제 후보물질 EIDD-2801 (MK-4482)에 대한 2상 임상시험을 같이 하기로 발표한 바 있다.
이 후보물질은 애초 미국 조지아 주 에모리 의대의 대학 내 벤처 회사인 DRIVE (Drug Innovation Ventures at Emory)가 인플루엔자 치료를 목적으로 개발한 것으로, 당시 Ridgeback Biotherapeutics가 펀딩 했는데, 이후 비영리법인인 DRIVE로부터 후보물질에 대한 라이센싱을 받아 개발해 오던 것이다.
Merck & Co. 는 이렇게 2 종의 백신, 2 종의 치료제 (하나는 중증, 하나는 경증)라는 파이프 라인을 깔아 놓고 레이스에서 승리할 날만 꿈꾸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올 1월, 지난해 5월에 인수 한 Themis Bioscience의 백신 후보물질 개발을 포기했을 뿐 아니라, 협력 관계를 맺었던 IAVI의 백신 후보물질 개발 포기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백신은 포기해도 치료제 개발은 계속한다고 했다.
그러나, 4월, 이번에는 4억 달러를 넘게 주고 인수한 OncoImmune 이 개발 중인 치료 물질 MK-7110에 대한 개발도 포기했다.
결국 Merck & Co. 에게 남은 건, MK-4482 뿐이며, 이게 바로 "몰 누피 라비 르"이다.
2. 몰 누피 라비 르
몰 누피 라비 르 (Molnupiravir)는 RNA 돌연변이 (mutagenesis)를 유도하여 바이러스를 사멸시키는 경구용 항바이러스 치료제이다.
앞서 언급했듯, 몰 누피 라비 르는 애초 인플루엔자 치료제로 개발되었다가 COVID-19 치료제 후보 약물로 개발 중이다. 이는 렘데시비르가 C 형 간염 치료제로 개발되었다가, 에볼라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어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로 사용되었다 다시 COVID-19의 치료제로 사용된 것과 같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C 형 간염 바이러스, 에볼라 바이러스, COVID-19를 일으키는 SARS-CoV-2는 모두 RNA 바이러스이다.
바이러스가 인체에 들어오면 인체 세포로 들어와 자기 유전자 (RNA)의 복제를 거듭한 후, 그 인체 세포를 깨고 나와야 하는데, RNA 복제에 매우 중요한 효소가 바로 RdRP이다. RdRP는 RNA-dependent RNA polymerase, 즉 RNA 중합효소이며 RNA 복제의 핵심적 요소이다.
렘데시비르의 경우 두 가지 방법으로 RNA 복제를 억제하는데, 하나는 바로 RdRP의 기능을 억제하고, 바이러스의 ExoN 효소(exoribonuclease) 교정을 회피하여 바이러스 RNA의 생성을 억제하는 것이다.
ExoN 은 RNA 복제 시 오류를 점검하는 효소이다. RNA는 통상 1 천 번 복제할 때마다 오류가 발생한다. 반면, DNA는 100 억 번 복제할 때 한 번의 오류가 생긴다. DNA 복제에는 오류를 점검하는 복잡한 장치들이 RNA에 비해 더 있기 때문이다. RNA 바이러스가 DNA 바이러스에 비해 돌연변이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몰 누피 라비 르는 렘데시비르와 다른 방법으로 RNA 증식을 막는다.
몰 누피 라비 르는 전구약물(prodrug)로, 복용 시 체내에서 NHC로 변환된다. NHC는 β-D-N4-hydroxycytidine의 약어이다. NHC에 3개의 인산이 붙은 걸, MTP(NHC Triphosphate)라고 한다.
몰 누피 라비 르는 궁극적으로 체내에서 'MTP'을 만들기 위해 복용한다.
그렇다면, MTP 은 무슨 역할을 할까?
MTP는 RNA 복제 즉, 바이러스 증식 시 염기 서열을 엉망으로 만들어 제 기능을 못하는 돌연변이 RNA 가 생성되도록 하여, 종국에는 바이러스가 사멸되도록 한다.
유전학의 기초를 다시 짚어보자.
핵산(Nucleic Acid) 즉, RNA 나 DNA는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프로그램이나 설계도라고 이해하면 된다. 이 핵산의 기본 구조는 염기, 당, 인산이다.
염기에는 아데닌(A), 구아닌(G), 사이토신(C), 티민(T), 우라실(U) 등 모두 5 종류가 있다.
당은 핵산의 뼈대를 만들며, RNA에는 리보스(Ribose)가, DNA에는 디옥시 리보스(Deoxyribose)가 사용된다.
염기와 당이 결합된 것을 핵당(Nucleoside)라고 하며, 핵산은 여기에 인산기(phosphate)가 3개 붙어 있는 형태를 취한다. 인산기 2개는 일종의 배터리와 같아, 인산기가 하나씩 떨어질 때마다 에너지를 내며, 이 에너지는 핵산 합성 시 사용된다.
5개의 염기 중, 각각 4개의 염기만 사용되는데, RNA 에는 A, G, C, U 가 사용되고, DNA 에는 U 대신 T 가 사용된다.
즉, RNA는 ATP(Adenosine Triphosphate), GTP(Guanosine Triphosphate), CTP(Cytidine Triphosphate), UTP(Uridine Triphosphate)로 구성된다.
CTP에 주목하자. CTP는 Cytidine이라는 염기에 3개의 인산이 붙은 핵당이다. 한편, 위에서 언급한 'MTP'는 NHC Triphosphate이고, NHC는 β-D-N4-hydroxycytidine이다.
뭔가 비슷해 보이지 않은가?
RNA 가 복제될 때, RdRP라는 RNA 중합효소가 필요된다는 것을 이미 언급했다. 인체 세포로 침입한 바이러스는 자신의 RNA로 유전 정보와 동일한 RNA를 복제해 난다. 이때 원래의 RNA를 RNA template이라고 하고, 복제된 RNA를 RNA product라고 한다.
복제가 계속되면, RNA product는 새로운 RNA product의 template 이 된다.
이렇게 복제할 때는 RNA의 유전 정보 즉, 염기에 대해 상보적으로 RNA product를 만든다.
즉, A는 U와 C는 G와 결합한다.
그런데, 만일 몰 누피 라비 르를 복용하면, 이 물질은 체내에서 NHC Triphosphate (MTP)로 바뀌어, RNA template에 G 나 A 가 오면, RNA product 에는 C 나 U 가 붙어야 하지만, M (NHC Monophosphate) 이 대신 붙고, RdRP 효소는 이를 무시한 체 복제를 계속한다.
다음 복제에서는 M 이 포함된 RNA template 이 사용되고, 이 엉터리 template으로 새로운 RNA product가 만들어진다.
이때, RNA template에 M 이 있으면, RNA product에 A 나 G 가 붙으며, RNA template에 G 나 A 가 오면 여전히 M 이 붙게 된다.
이를 거듭하면 돌연변이 RNA 가 생기게 되어, 결국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SARS-CoV-2 바이러스가 만들어지게 된다.
즉, Molnupiravir는 RNA 돌연변이 (mutagenesis)를 유도하여 바이러스를 사멸시키는 항바이러스 치료제라고 할 수 있다.
3. 그래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
이 답을 하기 전에, Merck & Co. 의 흑역사를 하나 짚고 가자.
앞서, Merck & Co. 가 무려 4억 2500만 달러를 주고 인수한 OncoImmune에 대해 이야기했다. Merck & Co. 은 이 회사를 인수하고 나서, 미국 정부로부터 3억 5600만 달러를 지원받아 올 6월까지 MK-7110 약 10만 도즈를 공급하기로 하는 계약을 지난해 12월 말 맺은 바 있다.
그리고, 언급했다시피, 올 4월 OncoImmune의 치료 약물 개발을 취소했다.
계약 당시, 미 보건부 장관은 '이 계약은 업계와 정부가 함께 협력해 얼마나 빨리 치료제 개발과 생산을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섣부른 예단이었다. 보건부 장관의 말을 믿고 Merck & Co. 의 주식을 산 이들은 이불 킥 했을 것이다.
Merck & Co. 가 왜 막대한 자금을 들여 인수한 후보물질을 포기했는지, 그것도 이미 3상 임상 시험을 끝낸 약물을 버렸는지에 대한 내막은 알 수 없다.
어쩌면, 생각보다 효과가 좋지 않거나, 예상 밖의 부작용이 있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OncoImmune 이 개발 중인 치료 물질 MK-7110 보다 Molnupiravir 가 월등히 효과가 좋고 부작용도 적어 하나에 집중하려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만일 후자라면, 게임 체인저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서두에 언급했듯, 다국적 제약사의 신약이 정부와 선구매 계약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이것이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예단하는 건 이르다.
물론, 위에서 살펴본 대로 Molnupiravir가 RNA 바이러스의 돌연변이 (mutagenesis)를 유도하여 바이러스를 사멸시키는 약물이고 그게 제대로 작동한다면, 이는 곧 모든 RNA 바이러스에도 적용 가능하다는 의미이며, 바이러스 치료의 새로운 챕터를 여는 획기적 약물이 될 수도 있으며, 이제 곧 모든 의사들은 더럽게 부르기 힘든 몰 누피 라비 르라는 이름을 달고 살아야 할 수도 있다.
그러길 바라지만, 아직은 이르다.
몰 누피 라비 르의 3상 시험이 모두 끝나고 FDA의 승인이 떨어질 때까지는,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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